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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재치 있게 농담을 할 것인가?’ 독후감 - '개그콘서트'의 몰락과 부활 그리고 재치 있는 농담

 

이 책을 처음 골랐을 때만 해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을 설명해 주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읽다보니 웃음에 관한 역사부터 세세하게 설명해서 기대와 달랐다.

 

혹시라도 비슷한 이유에서 이 책을 사고자 혹은 읽고자 고민하고 있다면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유머를 글로 배웠습니다.

 

유머는 학습 가능한 기술인가, 아니면 타고나는가?

2000년 전부터 이에 대해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키게로.

 

프리스턴대학교 출판부의 현대 독자를 위한 고대의 지혜시리즈 중

어떻게 재치 있게 농담을 할 것인가키게로'De Oratore'(국내 제목으로 번역하면 연설가에 관하여’)

퀸틸리아누스의 'Institutio Oratoria'(국내 제목으로 번역하면 웅변가 교육론’)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과 설명을 덧붙여 위에 질문에 답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키케로의 내용이2부는 퀸틸리아누스의 내용이 주로 이루어져 있다.

 

키게로와 퀸틸리아누스는 유머가 학습 가능한 기술이라는 접근으로 책에서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농담은 어떤 효과를 주고, 왜 농담에 대해 배워야 하는가?

 

농담이 주는 효과는 무궁무진하다.

 

농담의 장점은 책에 나온 이 문장 하나로 정리가 가능하다.

[농담은 주요한 문제들을 심각하게 다루기보다는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지적한다.]

 

키게로와 퀸틸리아누스는 농담의 힘을 잘 알았던 인물이었다.

일찍이 본인들의 재판이나 선거에서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웃음을 사용했고

그 과정을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우리도 농담의 힘을 이용하면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이점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잘 사용한다면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한다면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잘못된 유머를 잘못 사용하면 그만큼 남들에게 망신을 주고 미움받기도 쉽다.

남에게 망신을 줌으로써 미움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농담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재치있는 농담인가?

 

여러 이론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 종류는 사실 상황에 따라서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책에 나온 내용 중 자제하면 좋은 혹은 사용하기 좋은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키게로는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자제할 것들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 심한 냉소, 팔랑귀, 피해망상, 착한 척, 바보스러움

두 번째: 흉내

세 번째: 얼굴 일그러뜨리기.

네 번째: 음담패설

 

첫 번째는 잘못 사용할 경우 비웃음을 얻을 수 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품위를 떨어트릴 수 있다.

네 번째는 당연하게도 공적이든 사적이든 둘 다 자제하는 편이 좋다.

 

키게로는 이렇게 네 가지로 정리하면서,

우리가 대중 앞에서 해야 하는 농담은 특정 대상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언어 자체에서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쓰기 쉬운 예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하거나 다른 물체와 비교를 과장되거나 축소하는 것이다.

엉뚱한 답을 하는 경우도 일상에서는 활용하기 좋다.

 

이렇게 설명은 했지만 사실 일일이 적는 것은 의미 없는 것 같아서 적지 않겠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원어를 이용한 농담들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게 변해버리거나

재미없게 되어버린 게 보여 아쉬웠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개그콘서트였다.

최근에 개그콘서트가 다시 부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니 개그콘서트가 망하지이런 표현 들어본 적 있는가.

개그콘서트가 한창 폐지되었을 당시 한 번씩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재미있는 상황의 게시물이나 콘텐츠에 달렸던 댓글이었다.

 

어느 순간 개그를 지향하던 개그콘서트는 왜 시대에 안 어울리는,

재미없는 아이콘의 상징이자 놀림거리가 되어버렸던 걸까.

 

당시 개그콘서트가 왜 망했는지에 대해 분석해 놓은 글은 사실 많이 있다.

하지만 나에겐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던 중 답을 이 책 속에서 찾았다.

 

책에선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군가와 같이 웃는 것과 누군가를 비웃는 것 사이의 구분이 어렵다.]

[만담꾼과 대중 연설하는 정치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도 아주 얇디얇은 종잇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위 내용은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플루타르코스

키게로의 농담 중 지적한 두 가지 부분이었다.

 

위의 이야기와 딱 들어맞는 것 같지 않은가.

 

정치풍자와 더불어 유행어라는 말로 억지웃음과 박수를 받아내려 했던

개그콘서트의 마지막 모습 말이다.

 

개인적으론 이 두 가지 요소가 맞물리던 시기부터 개그맨의 역할이 크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단순히 웃음을 주는 사람을 개그맨으로 불렀다면, 개그프로그램에서 팬을 얻은 후 더 큰 방송에 출연하는,

어떻게 보면 다른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와 차이가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또한 이에 맞추어 개그 본연에 집중하기보다 전체적인 것을 보게 된 것은 아닐까.

 

[가장 재미있는 농담은 선한 유머이지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불편한 농담이 아니다.]

농담할 수 있을 때마다 매번 농담할 필요는 없다고 책에서 말한다.

 

농담으로 재미있었다면 좋겠지만

꼭 남을 웃겨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농담이 정말로 필요할 때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농담하는 만큼 농담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한데,

요즘은 그 정도가 과해져 사소한 것에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농담이 기분이 나쁜가?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

 

뭔가 불편하다면 의견을 표출하기 전에 한번 자신을 돌아보고 표출해도 늦지 않다.

그게 진정으로 불편한 게 맞는가, 아님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가.

 

새롭게 돌아올 개그콘서트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